국제신문

조봉권의 문화 동행 <19> 다함께돌봄센터 하랑플러스

조봉권의 문화 동행 <19> 다함께돌봄센터 하랑플러스

예술인들이 돌봄 선생님으로 뛴다, 신명나는 방과후 교실

– 서구 위치한 초등생 돌봄센터
– 올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선정돼
– 난타·문학·연극·무용·비보이 등
– 예술강사 5명 6개월 단위 수업
– 안기태 화백, 정익진 시인 등
– 지역예술인 자원봉사도 이끌어

– 예술문화분야 공공자원 발굴해
–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어 주목
– “아이들, 적성 찾고 행복해지길”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도 어디선가 좋은 일은 일어나고 있다. 그 좋은 일의 힘과 기운이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면서 돌아가게 한다. 좋은 일은 힘이 세다. 그런 좋은 일에는 예술과 문화가 하는 일도 포함된다. 우리 삶에 스며드는 문화예술은 대체로 좋은 쪽으로 발현한다.

지난달 27일 부산 서구 다함께돌봄센터 하랑플러스에서 돌봄센터 어린이들이 줌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예술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부산 서구 토성동에 자리한 ‘다함께돌봄센터 하랑플러스’는 토성초등학교와 서구청 사이, 번화가 근처의 주택가에 있다. 새 마스크를 동여매고 취재 필수품이 된 스프레이형 무알콜 손세정제를 고루 뿌리고 입구에서 체온을 잰 뒤 들어선 하랑플러스 안에서는 원격 비대면 ‘난타’ 수업이 한창이었다. 화면 속에서 아이들을 실감 나게 가르치던 강사는 부산 풍물계에서 유명한 장재희 씨였다. 아이들이 활달하고 스스럼없이 묻고 답하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 다양한 예술인 강사로 위촉

하랑플러스 원무현 대표가 현장을 설명한다. 그는 시인이며 빛남출판사 대표이고 봉사단체 ㈔아름다운사람들 이사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시행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예술로’에 저희가 응모해 지난해와 올해 선정됐습니다. 예술인들이 우리 센터에 와서 예술교육을 하면 재단 측에서 그분들께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식이죠. 올해는 난타 문학 연극 무용 비보이, 이렇게 예술강사 다섯 분이 6개월 단위로 수업합니다.”

원 대표가 책자 하나를 뿌듯한 표정으로 건넨다. 제목은 ‘프라이팬 놀이터’, 부제는 ‘다함께돌봄센터 하랑플러스 창작집’. “‘예술로’ 사업에 응모한 결과 우리 돌봄센터로 파견된 동화작가 백은석 선생님, 선생님은 7개월 동안 아이들에게 글짓기와 논술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코로나19로 대면수업이 힘든 상황에서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지도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창작집 ‘프라이팬 놀이터’가 발간됐습니다.…글쓰기의 두려움을 지워내고 무한한 상상력을 밑거름 삼아 창작해온 아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발간사 중)

이 돌봄센터에 다닌 어린이 22명이 ‘시인’이 되어 ‘작품’을 실은 이 책자가 하도 재밌어서 ‘누가 이렇게 잘 가르쳤을까’ 싶어 검색해보니 백은석 작가는 유혜린 작가와 함께 유명한 출판사인 창비에서 ‘공룡별에 놀러 와’ 등을 함께 펴낸 것으로 나온다. ‘창비 작가’가 토성동에?

■ 정부 시책 따라 크게 늘어

‘돌봄교실’은 뭐며 ‘다함께돌봄센터’는 뭔지 알아야 했다. 그에 관해서는 하랑플러스 이선애 센터장이 답해주었다. “지금 초등학교마다 ‘돌봄교실’이 있습니다. 비록 우선순위가 있지만, 초등생은 누구나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맞벌이 부모도 많고 가정 형태나 경제 활동은 더욱 다양해지니, 방과 후 등에 어린이를 ‘사회’가 어느 정도 돌보는 형태인 돌봄교실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게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충분치 않아서, 꼭 이용할 필요가 있거나 이용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데 있다고 한다. 초등 돌봄 사각지대가 커지고 여기서 다른 사회문제가 파생할 수 있다. “그래서 현 정부가 도입한 게 ‘다함께돌봄센터’”라고 이 센터장은 설명했다. 다함께돌봄 홈페이지(아동권리보장원)에 가보니 2020년 12월 전국 424개소이던 다함께돌봄센터는 2021년 8월 3일 현재 514개소(준비 중인 곳 포함)로 나온다. 정책상 비중이 높고 증가세도 빠른 느낌이다.

다함께돌봄센터를 이해하기 위해 놓쳐선 안 될 대목이 있다. 먼저 홈페이지 ‘사업안내’를 보자.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을 통한 지역 중심의 초등 공적 돌봄 확대”가 핵심 문구다. 그 목적은 “지역 사회 중심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아동 돌봄 공동체 기반 조성”이다.

■ 안기태 화백은 만화 수업

“이건 정부와 지자체의 지출·지원은 제한적이고 민간(지역사회)이 자력으로 상당한 비중의 자원을 마련해야 하는 ‘협력 모델’인가요”하고 물었다. 두 사람은 긍정했다. 원 대표의 설명이다. “정부는 시설비와 교사 인건비를 부담하고 운영비 일정액(하랑플러스는 월 총액 30만 원)을 지원합니다. 지자체(구청)는 형편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다를 테고요. 어린이 한 명당 이용료 5만 원을 받는데, 대체로 간식비 등으로 충당하는 정도입니다. 건물 월 임대료나 프로그램 운영비 등 비용은 대표인 제가 자비나 후원 등을 통해 마련합니다.”

민간의 협력과 지역사회 자원을 발굴하고 끌어오는 게 중요한 사업모델인 셈인데, 하랑플러스는 ‘지역사회 예술·문화 자원’을 발굴하는 전략을 잡았다. ‘문화 동행’이다. “우리 센터는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는데, 급여도 교통비도 안 받고 꾸준히 자원봉사하는 예술인을 많이 모셨다”고 원 대표는 말했다. 한국 만화사의 거장인 원로 안기태 화백이 만화 수업을 하고, 영문학을 전공해 영어를 오래 가르친 정익진 시인은 영어 수업을 한다. 문대호 미술 선생님도 ‘자봉’이다.

이 센터장은 “약간의 강사료만 받고 아이들 건강을 챙기는 인피니티 대표 박기민 체육 선생님도 고맙다. 안기태 화백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가장 높은 강사이시다”고 했다. ‘자봉샘’은 일주일에 한 번, ‘예술로샘’은 일주일에 두 번 강의한다. 방학 땐 대학생 멘토가 와서 가르친다.

■ 늘어나는 ‘자원’, 연결이 중요

하랑플러스의 정원은 20명이다. 요즘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긴급돌봄 대상자를 조금 더 받기는 하지만, 면적 당 정원이 정해져 있어 규모는 별 변동이 없을 것이다. 다른 다함께돌봄센터도 저마다 특징과 규모가 있다. 그러니 하랑플러스의 예술문화 활용법이 다른 센터에 맞으란 법은 없다. 어쨌든 하랑플러스는 예술문화 분야 공공 자원을 발굴하고, 예술인 자원봉사를 끌어내 네트워크로 만드는 방법을 개척해 아이들에게 ‘예술 프로그램을 통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는 다함께돌봄센터와 같은 공적 기관이 활용할 만한 예술·문화 분야의 공공적 프로그램이나 매칭·공모 사업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일선 센터가 이런 정보에 밝지 않다면, 활용할 자원이 어디 있는지 잘 안내하는 사업을 구상해볼 만하다. 이 센터장은 “최근 부산 서구시니어클럽의 어르신들께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우리 센터에 일을 도와주러 오시는데 참 고맙고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기서도 있는 ‘자원’을 ‘연결’하는 것의 중요함이 엿보인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다함께돌봄센터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면 비용 등을 센터가 모두 맡아야 하니 운신 폭은 좁다. 그렇다면 하랑플러스는 왜 예술문화 자원 발굴에 나섰고 어떤 효과를 거뒀나?

■ 구김살 없기를, 적성 찾기를

“올해 예술수업 결과물로 연극을 올릴 계획입니다. 코로나19 탓에 잘 될지 알 수 없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원 대표는 “아이들이 틀에 갇히지 않은, 재미있고 신나는 예술수업을 받고 적성과 소질을 빨리 발견해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한때 서먹서먹했던 아이들이 한결 밝고 멋지게 변했다”고 했다. 간결한 답변이었다. 그가 낮게 덧붙였다. “어렵게 자란 저는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걸 갚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하랑’의 뜻을 물었다. 그가 이번엔 큰 소리로 답했다. “순우리말입니다. 다 함께 더 높이.”

선임기자 조봉권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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