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원도심 작가의 산책길 따라 걸으면, 예술이야

예술가의 시선에서 본 원도심 산책길 ‘예술마실’을 만들어낸 작가들. 왼쪽부터 김대성, 문지영, 이경화, 임봉호 작가. 오금아 기자








2021-02-25 게재: 2021-02-25 (15면)

원도심 중앙동의 작가들이 일을 냈다. ‘예술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부산 중구의 거리를 즐길 수 있는 ‘길’을 냈다.

‘예술마실’을 만든 임봉호, 이경화, 문지영, 김대성 작가는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를 통해 만난 사이다. 임봉호 작가와 이경화 작가는 원도심예술가협동조합 창(이하 창)의 조합원이다. 문지영 작가는 또따또가 3기 입주작가 출신이다. 김대성 작가는 4기 입주단체 ‘회복하는 글쓰기’의 운영자이다. 이들은 지난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참여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는 예술인이 기업·기관과 매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이다. 2020 예술로 지역사업으로 진행된 부산문화재단의 예술인 파견 사업에 총 11개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예술마실’은 사회적기업 인가를 받은 창의 의뢰를 받아 추진됐다.

임봉호·이경화·문지영·김대성

‘예술로 프로젝트’ 산책코스 개발

‘새로운 도시 여행 안내서’ 기대

예술가의 산책길 만들기에 참여한 ‘예술마실’ 작가들이 중구 문화해설사와 함께 원도심을 돌아보고 있다. 예술마실 팀 제공

리더 예술인을 맡은 임봉호 작가가 “창에서 홍보 인쇄물의 아이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원도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제안하는 길,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조명하는 지도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았다”고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작가들은 원도심 자료 연구, 문화해설사와 함께한 지역 답사, 근대역사관·백년어서원 등 지역의 기관·단체 방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은 아주 과거보다 근과거부터 다시 뒤지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다. 원도심에서 살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지역을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네 명의 작가가 만든 ‘예술마실’은 네 개의 코스로 구성된다. 임봉호 ‘예술가의 수렵채집활동을 위한 산책길’, 이경화 ‘때깔 좋은 산책길’, 문지영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퇴근 산책길’, 김대성 ‘책과 함께 회복하는 산책길’이다. 각각의 코스에는 길을 소개하는 작가들의 성격과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예술가의 산책길 만들기에 참여한 ‘예술마실’ 작가들이 중구 문화해설사와 함께 원도심을 돌아보고 있다. 예술마실 팀 제공

임봉호 작가는 중앙동 작업실에서 국제시장까지를 최단 거리로 돌파하는 길을 소개한다. 부피가 큰 작업 재료를 사서 돌아올 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으로 일반·장식 철물, 포장재, 조명재료 상가와 오디오 골목 등이 코스에 포함된다. 임 작가는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오래된 가게가 사라지는 지역의 변화까지 눈에 보인다”고 전했다.

이경화 작가는 중앙동 식당 ‘후지라멘’부터 동광동 카페 ‘매일이 다르다’까지 대청로 양쪽을 잇는 산책길을 제안한다. 이 작가는 “마크커피처럼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응원하는 느낌으로 코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제는 동네 사장님들과 가게 심볼이나 앞치마를 디자인해 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5년째 중구에 거주 중인 문지영 작가는 “집과 작업실이 최단 3분 거리인데 커피 마시고 싶은 날, 화방 가는 날, 생각이 필요한 날 등 그날의 목표와 상황에 따라 오가는 길을 수십 가지로 뽑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40계단문화관-조선키네마옛터-옛 다테이시가옥-영남살롱 등을 잇는 문 작가의 퇴근길은 근대의 정취를 담뿍 머금고 있다.

김대성 작가는 문학평론가답게 책방 여행하다, 주책공사, 문우당, 미묘북 등 지역 서점을 연결하는 코스를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이 자주 가는 찻집을 더했다. 김 작가는 “다양한 책을 통해서 발상의 전환, 생각의 환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방마다 특징이 있으니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는 느낌으로 책에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코스이다.

원도심 예술가들이 산책길 지도 ‘예술마실’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술마실 팀 제공

당초 프로젝트는 홍보 아이템 만들기까지였지만 내친김에 작가들은 4개의 산책길을 합쳐 ‘예술마실’ 지도 초안을 완성했다. 작가의 눈으로 본 문화 산책 지도가 나온 것이다. 기존의 획일화된 방식의 관광지도와 달리 예술과 생활이 묻어 있는 ‘새로운 도시 여행안내서’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예술마실’ 참여 작가들은 산책길을 ‘월간 지도’ 형식으로 공개하거나 앱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풀어냈다. 임봉호 작가는 “예술가의 생활과 작업을 반영한 지도이다. 관광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서로의 작업과 생활을 들여다보는 매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도심예술가협동조합 창의 남현주 사무국장은 “예술로 사업은 창의 홍보물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예술가들의 산책 지도가 나왔다. 협동조합 안에 여러 분과가 있는데 그 중 해당하는 분과에서 사업을 이어받아 최종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면 좋을 것으로 보고, 오는 3월에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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