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형석 선생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 물리자/ …’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겸 교육자인 먼구름(遠雲) 한형석(1910~1996) 선생이 작곡한 ‘압록강 행진곡’이라는 독립군가 앞부분이다. 노래의 중간 소절들에는 일제강점기의 고국,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동포와 형제를 구하려는 광복군의 피 끓는 바람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1965년 부산대에서 경남고, 경남여고, 부산여고 세 학교 출신 대학생들이 만든 봉사 동아리 ‘라멜(La Mer·바다)’의 회가이기도 하다. 이 동아리 학생들과 졸업생 모임인 ‘한바랄(한바다)’ 회원들은 지금도 행사를 시작하거나 끝내기 전 ‘압록강 행진곡’을 완창할 정도로 애창한다. 이는 1955~1975년 부산대 교수로 재직했던 한 선생이 1960년대 동아리 지도교수를 맡아 학생들에게 투철한 국가관을 심고 봉사와 희생정신을 고취한 인연에서 비롯됐다.
어릴 때 중국으로 간 그는 중국군과 광복군에서 작곡, 선전, 음악 교관 등 활동으로 항일투쟁 의식을 진작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광복군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선 ‘압록강 행진곡’과 중국군 전체에도 보급된 ‘신혁명군가’ 같은 다수의 항일군가를 작곡했다. 그는 1940년 중국 시안에서 항일 오페라 ‘아리랑’을 창작하고 초연해 화제를 낳았으며, 작품성 높은 서정 가곡 등 100여 곡을 남긴 근대음악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한 선생은 1948년 귀국한 뒤 왕성한 항일운동 공로를 인정한 정부로부터 요직을 제의받았으나 과감하게 뿌리쳤다. 대신에 부산에서 후학 양성과 고향 발전에 매진했다. 한국전쟁 고아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부산문화극장장과 한국연극협회 부산지회장으로 일하는 등 지역 사회와 문화예술에 공헌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한 독립투사와 사회문화 운동가로 활약한 그의 위대한 행적과 음악 세계, 겸손함이 스며 있는 애향심이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때마침 부산문화재단이 13~15일 ‘한형석 문화축전’을 처음 마련해 탄생 110주년을 기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 선생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는 기념 심포지엄 개최, 그의 부산 발자취를 그린 창작 오페라 공연, 평전 발간, 유품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뜻깊다. 그는 부산의 지도층과 시민들이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자랑스러운 어른이기 때문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