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독립운동가 한형석, 부산시민의 스승된다···첫 문화축전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문화재단은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문화운동가인 먼구름(遠雲) 한형석(1910~1996) 탄생 110주년을 맞이해 ‘2020 한형석 문화축전’을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다. 

‘부산의 기억, 예술로 아로새긴 광복의 꿈’을 주제로 펼쳐지는 축전은 부산문화재단이 선각자 한형석의 삶과 사상을 되살려 부산 문화의 맥을 되살리고, 고인을 부산 시민의 사표(師表)로 자리매김하려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13일 오후 4시 부산 중구 광복동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 ‘먼구름 한형석 기념 심포지엄’과 평전 발간기념회가 열린다.

개막식을 겸한 심포지엄에서는 한형석의 삶과 예술, 사상을 다각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장혁표 청소년교육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이 ‘자유아동극장과 한형석 그리고 예술교육’을 주제발표한다. 장경준 국립항공박물관 전시교육팀장이 ‘한형석의 삶’을 발표한다.

이어 양지선 독립기념관 연구원이 ‘아리랑을 통해 본 한유한(형석)의 예술구국 투쟁’,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가 ‘현대공공예술의 선구자, 한형석’을 발제한다. 사회는 박창희 교수(경성대)가 본다.

세미나에 이어 한형석의 일대기를 정리한 ‘한형석 평전’ 발간 기념식을 한다. 도서출판 산지니가 부산문화재단의 의뢰를 받아 출판했다. 필자 장경준 박사는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국립항공박물관 전시교육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형석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한 한형석 연구 전문가다.

 평전은 실사구시의 정신에 따른 중국과 한국에서의 한형석의 항일운동과 광복 이후 부산에서의 문화운동 행적을 꼼꼼하게 검증하고 정리했다. 한형석 연구의 텍스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한형석의 유품도 전시된다. 해방 이후 항전가극 ‘아리랑’에 대해 기록한 글과 악보, 아동가극 ‘리나'(1937) 유랑자의 노래 악보, 자유아동극장 가설흥행 허가원(1953), 탈극 ‘순절도'(1969) 대본 등을 볼 수 있다.

 부산문화재단이 루체테음악극연구소에 제작비를 지원해 제작한 오페라 ‘그 이름 먼구름’도 14, 15일 오후 5시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공연된다. 광복군 출신으로 해방 이후 부산으로 돌아온 한형석이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축으로 삼아 그의 독립운동 행적과 해방 후 전쟁고아를 위한 교육자적 헌신을 되짚는다.

한형석 역에 바리톤 이광근(부산대 음대 교수),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이자 한형석과 함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역 정해석 역에 소프라노 구민영이 출연한다. 소프라노 정수진 강소영 박현진, 베이스 박형진 등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른다.  김성경 예술창작소 코드 대표가 연출하고, 지휘자는 전진(동아대)이다.

입장권은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강동수 부산문화재단 대표는 “이번 축전을 기획한 것은 예술가이면서도 광복군 소속으로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투쟁한 먼구름 선생의 삶을 부산 예술계는 물론 부산시민 모두에게 큰 좌표로 삼기 위한 것이다”면서 “내년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해외 교류가 가능해진다면 한형석 선생을 기념하는 대규모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한편 시민과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된 ‘한형석 항일 예술운동 탐사대’도 구성해 중국 상하이와 시안 중심의 한형석 항일루트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형석은 1910년 동래 교동(현 명륜동)에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한흥교의 아들로 태어나 1915년 중국으로 이주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신화예술대학 예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39년 시안에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전시공작간부훈련단 예술반 교관으로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같은해 한국인 독립운동단체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해 교관을 맡았다. 이 부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뒤 ‘신혁명군가’, ‘압록강 행진곡’, ‘출정’, ‘아리랑 행진곡’ 등 다수의 항일군가를 작곡해 발표했다. 1940년 5월 시안에서 항일 오페라 ‘아리랑’을 초연하는 등 근대음악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48년 9월 귀국한 그는 정부의 요직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부산으로 귀향했다. 부산극장장으로 일하면서 영화 ‘낙동강’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6·25동란 때는 전쟁 고아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을 설립 했다. 이후 부산대 중어중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6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lnetphoto@newsis.com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