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구국’ 실천한 마음처럼…노래와 길 따라 그를 기리다
‘예술구국’ 실천한 마음처럼… 노래와 길 따라 그를 기리가
2021 먼구름 한형석 문화축전 현장
“저희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록 밴드 ‘플랫폼 스테레오’(Platfrom Stereo)입니다. 2018년 결성해 공연하면서 앨범을 여러 장 냈고,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했고, 삼성전자와 애플의 광고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참 열심히 활동했는데, … 공연하기 참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이번 작업 제안을 받고 무조건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인 증조외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꽃다운 청춘, 지금 제 나이 즈음에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됐습니다. 독립운동가이며 ‘예술구국’을 실천한 예술가인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삶이 제게는 증조외할버지의 삶과 겹칩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곳 부산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며 살아갑니다. 먼구름 한형석 선생께서 만든 노래 ‘여명지가’를 플랫폼 스테레오의 감각으로 새롭게 편곡한 작업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지난 10월 21일 목요일 오후 7시30분 부산 서면 ‘KT&G 상상마당 부산’ 3층 라이브 홀에서 ‘2021 먼구름 한형석 문화축전’의 첫 행사인 ‘한형석 다시 부르기’가 펼쳐졌다. 플랫폼 스테레오는 그 첫 순서를 맡았다.
그지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먼구름 한형석(한유한) 선생의 오래된 독립군가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플랫폼 스테레오의 보컬 김진섭 씨가 증조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독립운동가 한형석께 존경심을 표현하는 순간 왠지 벅찬 느낌이 왔다. ‘반일종족주의’ 따위를 주장하는 세력이 아무리 볼썽사납고 악하게 설쳐대도, 우리 젊은이들은 참 든든하고 튼튼하고 반듯하구나. ‘역사를 침략 무기로 삼고 왜곡하는 일본 극우와 국내 앞잡이 세력은 결국 실패하겠구나…’하는 바람과 판단은 강해졌다.
‘한형석 다시 부르기’는 기획 자체가 멋졌다. ‘먼구름 한형석 문화축전’을 주최하는 부산문화재단이 기획했고, 프로듀서 박진모 씨가 실무를 총괄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윈다’(WINDA) ‘라펠코프’(Rappelkopf)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플랫폼 스테레오’가 한형석 선생이 지은 독립군 노래를 한 곡씩 맡아 자신들 감각에 맞춰 새롭게 편곡하고 ‘창조’해서 불렀다.
윈다가 부른 ‘광복군 제2지대가’, 라펠코프가 부른 ‘압록강 행진곡’,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가 부른 ‘흘러가는 저 구름’, 플랫폼 스테레오가 부른 ‘여명지가’는 그렇게 오늘의 젊은 음악인들 손과 가슴에서 거듭났다. 록 밴드 윈다의 멤버 4명 가운데 2명은 독립군 느낌을 내려고 군복 상의(개구리복)를 입는 성의를 보였다. 윈다의 여성 보컬(개구리복을 입었다)이 부른 ‘광복군 제2지대가’는 강력하고 독특했다. 먼구름 선생이 이런 방식으로 되살아나는구나! 록 밴드 라펠코프의 ‘압록강 행진곡’은 절정을 쳤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렬했다. 2인조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의 ‘흘러가는 저 구름’은 서정성과 섬세함의 극치를 선사했고, 플렛폼 스테레오의 ‘여명지가’는 이 밴드 특유의 아득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강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숨을 쉬었다. 다들 먼구름 선생의 독립운동가를 ‘살아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들 뮤지션은 객석을 향해 한결같이 “먼구름 선생의 독립운동가를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편곡하게 해준 박진모 프로듀서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 단조의 무거운 풍의 원곡을 편곡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점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라펠코프의 보컬 김경한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압록강 행진곡’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디 밴드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날 부른 노래를 음원으로 발매할 예정이다. 먼구름 선생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의 뮤지션들이 힘을 모아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문탁이 ‘압록강 행진곡’, 크라잉넛이 ‘독립군가’, 노브레인이 ‘앞으로 행진곡’, 럼블피쉬가 ‘자주독립가’ 등을 부른 명반이 탄생했다. 부산이 낳은 큰 인물 큰 예술가 큰 스승인 먼구름 한형석을 부산의 젊은 뮤지션들이 새롭게 조명한 명반이 탄생하기를 기원한다.
2021 먼구름 한형석 문화축전은 부산문화재단·한유한형석기념사업회·부산시 주최로 10월 21~23일 다채롭게 펼쳐졌다. 22일에는 답사·탐방 행사인 ‘먼구름 길따라’와 ‘먼구름 한형석 국제세미나’, ‘창작오페라 그 이름 먼구름 공연’이 있었다. 23일에는 ‘창작오페라 그 이름 먼구름’ 공연이 한 번 더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먼구름 길따라’ 답사·탐방에 동참했다. 동래부 동헌에서 시작해 동래만세거리~장관청~옛 대동병원~한흥교 본적지~일성관(현 복산동주민센터)~동래향교~대동병원을 거쳤다. 부산 서구 아미동 먼구름한형석길(도로주소명)에 자리한 자유아동극장 터에도 갔다. 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선우성혜 교수의 안내와 해설로 답사는 진행됐다.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집안의 어마어마한 ‘위대함’을 짧게나마 실감하는 여정이었다.
한형석의 조부인 한규용은 19세기 말부터 동래에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형석의 부친인 한흥교 대에 와서는 가문이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면서 민족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투쟁에 나선다. 한흥교는 부산 최초의 양의(洋醫)이며 지금의 대동병원이 있게 했으며(대동병원 로고 글씨는 먼구름 한형석의 작품이다)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한형석 선생 대에 와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독립투쟁·무장항쟁을 펼치고 ‘예술항일’ ‘예술구국’ 활동을 펼치면 큰 발자취를 중국에 남겼다. 광복 뒤 한국으로 와서는 부산에서 어렵게 사는 어린이를 위한 예술교육을 개척했다. 위대한 예술인이자 가객인 한대수 또한 이 집안의 자손이다.
우당 이회영 가문, 경주 최씨 집안, 백산 안희제 가문 등을 우리는 반드시 명문가로 기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덜 탐욕스러워지고 공동체를 더 생각한다. 먼구름 한형석 집안이먀말로, 명문가 중의 명문가이라는 확신이 자꾸 커졌다. 한형석 가문을 기리는 일에 더 힘써야 한다.
22일 오후 KT&G 상상마당 부산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도 참가했다. 철학자·미학자 이지훈 박사가 진행했다. 량마오춘 중국베이징중앙음악원 교수는 한유한(한형석)의 중국 활동을 발굴하고 연구해 세상에 알린 학자이다. 그는 ‘한유한의 어린이 가무극 창작’을 중국에서 온라인으로 발제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유필규 연구위원이 ‘한형석과 한흥교의 독립운동’, 선우성혜 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교수가 ‘동래지역 세거성씨 먼구름 한형석 집안의 사회경제적 위상’,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단의 학자 양지선 씨가 ‘광복군 한유한의 항일음악 연구’를 발제했다.
22일과 23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른 오페라 ‘그 이름 먼구름’은 지난해 중극장에서 공연한 작품을 대극장에 맞게 키웠다. 음악가 백현주 씨가 제작·작곡을 맡았고 박춘근(대본) 김지용(연출) 전진(지휘), 성악가 김종표 구민영 박상진 권소라 박나래 이태흠 이주민이 참여했다. 재공연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회성’은 도움이 안 된다. 여러 일정이 겹쳐 이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